박남희 - 폐차장 근처

이구구299 2014. 9. 27. 18:42




폐차장 근처  

 

 


박남희  

 

 

 



이곳에 있는 바퀴들은 이미 속도를 잃었다 
나는 이곳에서 비로소 자유롭다 
나를 속박하던 이름도 광택도 
이곳에는 없다 
졸리워도 눈감을 수 없는 내 눈꺼풀 
지금 내 눈꺼풀은 
꿈꾸기 위해 있다 
나는 비로소 지상의 화려한 불을 끄고 
내 옆의 해바라기는 
꿈같은 지하의 불을 길어 올린다 
비로소 자유로운 내 오장육부 
내 육체 위에 풀들이 자란다 
내 육체가 키우는 풀들은 
내가 꿈꾸는 공기의 질량만큼 무성하다 
풀들은 말이 없다 
말 없음의 풀들 위에서 
풀벌레들이 운다 
풀벌레들은 울면서 
내가 떠나온 도시의 소음과 무작정의 질주를 
하나씩 지운다 
이제 내 속의 공기는 자유롭다 
그 공기 속의 내 꿈도 자유롭다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저 흙들처럼 
죽음은 결국 
또 다른 삶을 기약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모처럼 맑은 햇살에게 인사한다 
햇살은 나에게 세상의 어떤 무게도 짐지우지 않고 
바람은 내 속에 
절망하지 않는 새로운 씨앗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