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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님의 침묵 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갔습니다.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 2014. 10. 16.
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꽃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2014. 10. 15.
김영랑 - 가을한 내음 가늘한 내음 김영랑 내 가슴 속에 가늘한 내음 애끈히 떠도는 내음 저녁 해 고요히 지는 제 머언 산(山) 허리에 슬리는 보랏빛 오! 그 수심 뜬 보랏빛 내가 잃은 마음의 그림자 한 이를 정열에 정열에 뚝뚝 떨어진 모란의 깃든 향취가 이 가슴 놓고 갔을 줄이야. 얼결에 여흰 봄 흐르는 마음 헛되이 찾으려 허덕이는 날 뻘 우에 처얼석 갯물이 놓이듯 얼컥 니이는 훗근한 내음 아 ! 훗근한 내음 내키다 마아는 서어한 가슴에 그늘이 도오나니 수심 뜨고 애끈하고 고요하기 산 허리에 슬리는 저녁 보랏빛[출처] [김영랑]가늘한 내음|작성자 몽당연필 2014. 10. 15.
신동엽 -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 껍데기는 가라.4월도 알맹이만 남고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껍데기는 가라.이 곳에선, 두 가슴과 그 곳까지 내논아사달 아사녀가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부끄럽 빛내며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2014. 10. 10.
정호승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나무 그늘에 앉아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나무 그늘에 앉아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2014. 10. 10.
안도현 -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진눈깨비는 되지 말자.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사람이 사는 마을가장 낮은 곳으로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우리가 눈발이라면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편지가 되고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새살이 되자. 2014. 10. 10.